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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부장 이야기

너 때문이야 2023. 11. 11. 17:54

지역마다 특징도 있고 특산품도 있다
전남 영광은 신안과 함께 천일염 생산의 주산지다
꼭 순위를 메기자면 신안을 따라갈 처지는 못되지만 말이다
요즘 소금값이 장난이 아니다
13년 전 내가 전남 영광으로 이사를 오니 논 중앙에 이상한 건물들이 많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게 염전 이였는 데 나는 영광에서 소금이 많이 생산 되는지도 모르고 이사를 왔다
당시 천일염 20kg 한부대 가격은 대략 2천원에서 3천원 수준 이였다
요즘 같으면 그때 사놯어도 남는 장사다
과거부터 염전의 이미지는 그렇게 좋질 않았다
힘들고 노예처럼 일하는 곳이 염전으로 인식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사실 그런 일도 몇번 있어 사회적으로 충격을 줬던 것도 사실이다
염전도 하나의 식품 회사다
염전에 상호를 걸진 않았지만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으니 당연히 상호가 있다
혼기가 찬 딸을 가진 부모라면 딸의 출가에 신경이 쓰일 것이다
영광에 염부장이란 젊은이도 혼기가 차 장가는 가고 싶은데  좀체 중신애비가 나서질 않터니 어느날 소식이 왔다
서울 처녀라는 데 염부장 입장에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였다
과거에는 맞선도 없이 부모님들 결정으로 혼인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매쟁이가 신랑감을 ㅇㅇ식품 염부장이라 소개했고 신부측에선 승락을 했다
아무리 시골의 작은  식품회사라지만 그래도 부장 정도면 먹고사는대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서울에서 영광 까지 오려니 차를 몇번 갈아타고 결국 시집을 왔다
다음날 부터 신랑은 새색시를 데리고 염전으로 출근했다
남자도 힘든데 여자가 염전일을 하려니 이건 노예보다 더 가혹했다
집에 돌아온 새댁은 시부모님의 밥상만 차려주고 뻗고 말았다
물어보기도 그렇고 눈치를 보니 염부장이란  남편 성은 원씨였고 부장이란 직급도 직급이 아니라 염전에서 일하니 염부장이라 불렀던 것이다
직원 이라곤 사장 빼고 남편 혼자였다
현재도 그렇지만 호칭에 대한 문제는 예전에나 현재도 애매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염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흔히 염부장이라 불렀던 것이다
기가막힌 일이였다
당장 이라도 친정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실행을 못하고 밤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긴 억울 했지만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면서 한떼가 두떼기 염전을 사들였다
배운게 도둑질 이라고 남편도 평생 염전에서 일했고 주변 이웃 역시 모두 염전에서 일하니 별수 없었다
그럭저럭 먹고 살만해졌다
그래도 흰머리가 늘어가고 그토록 고생을 했건만 80이 넘어서야 염전을 남에게 임대하고 읍내로 나갔다
이 아주머니 말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적응력이 대단한 분이다
한마디로 친화력이 끝내준다
팥죽 장사를 시작했다
전라도는 팥죽을 많이 먹는 편이다
2년만에 우리말로 치면 빌딩을 샀다
목이 좋은 입구에 2층 건물을 매입하여 번듯한 음식점을 차렸다
대박이다
몇년전 일이다
엇그제보니 리모델링을 하고 있었다
감각이 있는 노인이다
이젠 며느리와 아들까지 불러들여 함께 장사를 한다
점심때 가보면 정신이 없을 정도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90살이 다 되었을 것이다
성격이 좋아서 그런지 정정하다
운명이란 있다
다만 그 좋은 운명이 언제 찾아오는지가 중요하다
초년 운세가 좋은 사람도 있고 말년 운세가 좋은 사람도 있다
어쨌든 축하 할 일이다


염부장네 대박 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