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채소를 키워야 할 시기다
입춘은 지났지만 아직 여름은 반나절만큼 남았다
앞으로 보름 정도는 더운 날씨가 이어질 게다
김장 재료에도 여러가지 채소가 필요 하지만 그래도 주재료는 배추이니 가장 비중이 큰 채소다
중부지방에선 이미 옮겨심기를 한 곳도 있을 게다
전라도는 아직 시간적으로 여유는 있다
9월 말에 모종을 부어도 되지만 나는 좀 일찍 부었다
배추는 발아가 잘 되어서 보기좋게 싹이 텃는 데 양배추는 발아가 잘 안된다
양배추를 김장용으로 이용하는 분들은 없다
나눠 먹으려고 올해 처음으로 씨았을 뿌려봤다
양배추를 배추 보다 일찍 뿌렸는 데 발아도 안되고 더디큰다
서툴고 게으른 농부가 하는 일이라 그런지 시원하게 되질 않는다
사실 시골에서도 양배추를 키워먹는 농가는 별로 없다
대량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다보니 필요할 때 시장에서 한포기 사디먹는게 편하기 때문이다
내가 키워 재배하면 이웃에게 선심을 쓸 수도 있으니 한번 모종을 부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하는 게 양배추다
요즘이야 김장을 사다 먹거나 아니면 절임 배추를 사다가 김장을 하는 경우도 많다
또 먹거리가 풍부하니 량도 많이 줄었다
과거 같으면 일단 먹거리가 부족 했으니 김치 소비가 많았으며 대가족 시대에는 몇백포기 씩 담그었다
그래도 봄이면 김장 김치가 떨어져 맨밥을 먹기도 해야 했다
또 당시에는 요즘처럼 배추가 큰게 없었다
농업의 혁명은 채소 부터 시작 됐다
그 주인공은 우장춘 박사다
재일 교포로서 우수한 농학 박사였으며 박정희는 우장춘을 힌국으로 데려오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며 그가 돌아와서 비로서 현재 우리가 재배하는 채소들이 개량 됐다
70년대 까지도 배추가 결구가 안돼 볕짚으로 묶어줘야 했었다
불행 했지만 우장춘 박사는 우범선의 아들로 그의 아버지가 민비 살해에 가담한 친일 역적 이였다
그 사실을 알고있던 우장춘으로서는 한국에 온다는 게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한국에 와서 뛰어난 업적을 만들었지만 나서지 않았고 조용히 연구에만 몰두하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의 나이 61세 였다
물론 당시로선 짧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코 긴 삶은 아니였다
아마도 그는 죽는 그 순간 까지 아버지의 죄를 조금이나마 갚으려 연구에만 몰두 했을 것이다
우리가 먹는 채소 하나에도 아픈 역사가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