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들이 김치를 안먹는다고 해도 아직 우리의 식단에선 김치가 빠질 수는 없다
김치의 주재료는 배추와 무우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또는 양념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담그는 사람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다
요즘은 김장 김치도 소량 씩 담그지만 6~7십년대 까지는 보통 수백 포기 씩 담그었다
당시만 해도 대가족 제도였고 반찬 이라는 게 김치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또 당시의 배추는 지금처럼 포기가 크지도 않았고 결구를 위해선 볕짚으로 하니하나 묶어줘야 했었다
당시만해도 김치라는 말 보다는 짠지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김치도 아까워 맘것 먹지 못하던 시절이라 김치를 짜게 담그어 아껴먹었다
요즘은 무우 장아찌를 말하지만 과거엔 배추 김치를 짠지라고 했었다
지금과 같이 자연적으로 결구가 되고 커다란 배추를 만든 사람은 우장춘 박사다
그는 재일교포로 그의 아버지는 우범선이며 어머니는 일본 사람이다
그는 일본에서 전도유망한 젊은이로 미래가 보장 됐지만 박정희의 구애에 한국행을 택했다
하지만 그에겐 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으니 아버지의 죗값을 치루는 것 이였다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 우범선은 민비 살해사건에 개입한 역적 이였기 때문에 그는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여 아버지의 죄값을 갚는다는 일념으로 살았지만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 했으니 그의 나이 61세였다
우리나라 채소 육종의 선구자였다
헌데 배추가 가끔 미친듯 널뛰기룰 해서 주부들 속을 태운다
배추 한포기가 20000원을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사실 포기라는 단위는 정확하질 않다
포기도 큰놈은 몇 킬로그램도 나가고 작은 놈은 1킬로그램도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건 배추값이 비싸다는 것이고 그나마 수급이 안돼 수입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중국산 배추가 본격 수입 됐다고 한다
하지만 소비자의 외면을 의식한 김치 제조업체나 대형마트에서는 꺼린다고 한다
몇해전 일이지만 과거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나왔던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선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했고 이로인해 기생충이 배추에 알을 낳았을 수도 있고 또는 인분 속에 있던 기생충 알이 배춧잎에 묻었을 수도 있을게다
7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위생시설도 많이 낙후 됐었다
당시만해도 푸세식 화장실이 많았고 이 인분을 주로 배추나 무우 밭에 거름으로 많이 이용 했었다
하지민 중국은 최근 까지도 과거 우리의 농법을 그대로 답습 했으니 기생충 알이 나올법도 했다
인분을 주는 것이 나쁜건 아니다
다만 주려면 충분히 썪혀서 주면 좋은데 인분이란 화장실에서 퍼서 숙성을 시킬 장소가 없다는게 문제다
설령 있다해도 그 향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좋아 할리 없으니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배추는 생육기간이 짧게는 60일에서 길게는 100여일 정도라 각종 농약성분도 문제가 될 소지가 많으니 소비자들은 신경을 안쓸수 없다
이번처럼 배추값이 비싼 원인은 여름철 고온 때문 이라고 한다
고랭지 배추도 금년엔 작황이 좋았을리 없다
당연히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농가에서 키우는 김장용 배추가 출하 되려면 앞으로 한달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결국 김장철 까지는 배추 가격이 비쌀 것 같다
우리가 먹는 배추 한포기도 개발하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부귀영회를 포기하고 선친이 지은 죄값으로 조국에 헌신 했다는 사실을 기억 해 준다면 지하에 계신 우장츤 박사도 한결 짐이 가벼워 질 것이다